대구 섬유 너무 일찍 포기…국내최고 되면 경쟁력 생겨
[영남일보-3면]2010-1-1(** PDF 파일 첨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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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순 전 부총리(왼쪽)와 이효수 영남대총장이 영남일보 서울지사에서 국내외 경제 현안을 놓고 환담을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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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 분야의 ''바이블''로 불리는 ''경제학원론''의 저자이자, 한국 경제학계에서 정부 역할을 강조한 ''조순학파''를 창시한 조순 전 부총리와 ''단층노동시장이론''을 개발해 국내 노동경제학의 새로운 지평을 연 이효수 영남대 총장이 지난해 12월21일 오후 영남일보 서울지사(프레스센터 11층)에서 만났다.
두 석학은 서울대 대학원 석·박사과정 지도교수와 제자 사이로 만나 수십 년간 돈독한 사제 관계를 이어왔다. 조 전 부총리는 이 총장의 결혼식 주례를 선 것을 비롯해 영남대 총장 취임식에도 직접 참석해 축사를 하기도 했다. 조 전 부총리는 이 총장이 총장으로 당선되자 먼저 전화를 걸어 "이군 자네 다음으로 내가 기쁠걸세"라고 할 정도로 각별한 애정을 보여왔다.
이날 본지 신년특별대담을 위해 만난 두 석학은 세계금융위기의 원인을 글로벌 마켓에 걸맞은 경제시스템 실패와 금융시장에서의 정보의 비대칭성 때문으로 진단했다. 우리나라가 세계 각국과 추진하는 FTA가 우리나라 경제 발전을 위한 능사가 될 수 없다는 따끔한 충고도 했다. 좋은 일자리(Decent job) 창출을 위해서는 새로운 지식기반산업을 일으켜야 한다는 명쾌한 해법도 제시했다. 지역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동남권 신공항 조기 건설과 ''Y형 인재(인성을 바탕으로 한 진취적이고 창의적인 인재)''를 길러내는 글로컬 이니셔티브 유니버시티(GIU) 육성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 2008년 9월 리먼 브러더스 파산으로 촉발된 세계 경제 위기가 큰 고비를 넘어선 듯 하다. 2010년 세계 경제를 어떻게 전망하고, ''더블딥''(double dip: 경기침체 이후 일시적으로 경기가 회복되다가 다시 침체되는 이중침체 현상) 가능성은 없는지.
▲조 전 부총리= 이제 큰 고비는 넘겼다. 충격은 일단 극복된 상태다. OECD나 IMF도 올해 세계경제성장이 2~3% 가능할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성장률이라는 수치 자체가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다. GDP에는 여러 가지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실물경제동향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지는 못하며, 국민생활과도 밀접한 연관이 없다. 경제에서 중요한 것은 국민생활이 얼마나 윤택하고 안정적인가다. 그런 의미에서 고용과 물가가 중요한 지표다. GDP, 경제성장률 등 수치에 너무 매몰돼서는 곤란하다. 더블딥은 당장 임박한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그 가능성은 항상 있다고 본다. 실물경제의 확실한 회복 조짐이 아직 안 보이는 상태고, 실물과 금융의 괴리가 심하기 때문이다.
▲이 총장= 선생님 말씀처럼 2010년엔 2009년에 비해 전반적으로 회복될 것이다. 당장 더블딥에 빠져들 가능성도 낮다고 본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세계경제가 구조적 불안정성을 가지고 있어서 언제든지 다시 세계경제의 불황 내지 위기로 빠져들 가능성이 내재돼 있다. 안심하기는 이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글로벌 마켓의 속성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과거에는 각 국이 독자적인 경제정책을 펴는 것이 가능했지만 지금은 다르다. 글로벌마켓은 통합되고 있다. 특히 금융시장은 더욱 그러하다. 따라서 글로벌마켓에 맞는 새로운 경제시스템이 필요한데 이에 실패한 것이 결국 세계경제위기로 귀결된 것이다. 미국처럼 금융이 고도로 발달된 나라에서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난해한 파생상품들로 인해 공급자와 수요자 간 정보의 비대칭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그로 인해 초래된 금융시장실패는 글로벌마켓을 통해 급속히 전 세계로 확산돼 실물경제에 타격을 주고 있다. 마치 ''신종플루''처럼 전 세계경제는 대책 없이 당할 수밖에 없었다.
― 금융위기 후 우리나라 경제는 OECD 국가 중 가장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올해 우리경제에 악재는 없는지.
▲이 총장= 최근 세계경제기구도 4.5% 성장을 전망하고 있을 정도로 한국의 GDP는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문제는 인플레다. 재정지출확대로 시중에 돈이 많이 풀려 있는 상황이고, 국제적으로 원자재 수요가 늘어나면서 발생할 가격상승 등은 인플레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환율변동의 불안정성이 매우 클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우리나라처럼 대외의존도가 큰 경제구조에서는 직격탄이 될 수도 있다. 또 하나 우려되는 바는 경제성장률과 국민들의 체감경기와의 괴리가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일자리 창출 없는 경제성장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는 새로운 산업이 활성화돼서 경기회복을 주도한 것이 아니라 정부의 재정지출 확대에 의한 침체된 경기의 회복이나 재고정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일자리 없는 성장이 계속되고, 정부의 재정지출 확대로 인한 단기적 경기부양책도 축소되면 오히려 시민들의 체감경기는 더욱 악화될 수 있다.
▲조 전 부총리= 앞으로의 경제정책 기본 목표는 어떻게 하면 고용을 늘리면서 성장할 것인가가 돼야 한다. 고용이 늘지 않거나 인플레가 일어나는 상황에서의 경제성장은 차라리 안하느니만 못하다. 당장 고용을 늘리는 즉효약은 없다. 재정지출을 통한 고용증대는 오래 갈 수 없다. 긴 안목에서 내수산업을 육성해야 한다.또 정부차원에서는 인력 수급의 장기전망으로 해 교육과 산업정책을 이에 맞춰야 한다. 물가를 반드시 잡아야 한다. 한국의 경제정책은 물가에 너무 무신경하다. 정부는 올해 물가상승률을 3% 수준으로 잡겠다고 하는데, 이도 적잖은 물가상승이다. 경제정책은 서민층, 중산층, 그리고 경제적 약자를 고려해야 한다. 인플레처럼 서민을
괴롭히는 것은 없다.
― 최근 실시된 한 설문조사에서도 국민들이 새해 경제에 바라는 가장 큰 소망은 고용시장 안정과 일자리 창출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이를 위해 정부는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
▲조 전 부총리= 그 분야는 이 총장이 전문가다.
▲이 총장= 글로벌마켓에서 선진각국이 출혈경쟁을 하는 과정에서 노동집약적 산업의 기술진보가 지나치게 급속히 진행되었기 때문에 성장은 하지만 일자리는 늘지 않는 구조가 되었다. 따라서 기존의 전통산업에서는 단순히 생산량이 늘어난다고 일자리가 늘어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오히려 일자리는 줄고 있다. 따라서 일자리를 늘리려면 괜찮은 일자리(decent job)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소비여력을 지닌 계층이 늘어날 것이고, 그들의 소비가 늘어남에 따라 3차 산업을 중심으로 일자리 창출이 가능해질 것이다. Decent job은 고부가가치 서비스, 첨단의료, 디자인 등 지식기반산업분야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 분야에서는 자본이나 토지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지식과 인재가 중요한 생산요소로 대두하고 있다. 따라서 대학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산업사회에서는 지식의 변화속도가 매우 느렸기 때문에 대학이 지식의 전달자로서 표준화되고 정형화된 인재만 양산하면 됐지만, 지금은 새로운 지식을 생산하고 창출할 수 있는 인재를 길러내는 역할이 대학에 요구된다.
― 출구 전략 시기에 대한 논란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조 전 부총리= 선진국들조차 출구전략을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다르다. 돈을 풀어야 경제를 살릴 수 있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일거에 많은 돈을 풀면 위기극복에는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돈을 계속 푸는 정책이 장기화되면 그것은 실물부문을 살리기 전에 금융부문의 거품을 먼저 가지고 올 가능성이 높고, 그렇게 되면 더블딥이 일어날 것이다. 고용이 확대되기 전에 또다시 금융위기를 초래할 것이기 때문이다. 더블딥을 막기 위해서라도 출구전략을 적기에 써야 한다.
▲이 총장= 민간경제의 자기회복능력을 어떻게 빨리 확보하느냐가 관건이다. 민간경제의 회복을 시장원리가 아닌 정부의 정책개입에 기대하는 것은 응급처방에 불과하다. 계속쓰면 민간경제의 자기 회복능력이 오히려 저하될 것이다. 정부의 금융정책은 ''마중물''(펌프에서 물이 잘나오지 않을 때 물을 끌어올리기 위해 위에서 붓는 물)로서의 역할에만 충실하게 하고 그쳐야 한다. 금융위기 후 전 세계가 동시에 돈을 풀어 놓은 상황에서 출구전략의 시기 및 방법에 대한 세심하고도 긴밀한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다.
― 대구·경북의 경제 전망은, 그리고 취약한 지역 산업구조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대책이 필요한가.
▲이 총장= 대구는 산업구조와 기반이 극히 취약하다. GRDP도 10년 이상 전국 광역자치단체 중 꼴찌라는 오명을 벗어 던지지 못하고 있다. 물론 올해 국내 경기가 회복되면 지역경제도 동반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이 가능하다. 그러나 문제는 지역경제의 체질을 어떻게 강화할 것인가이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기존산업분야가 고부가가치산업으로 진화해야 한다. 섬유업체들이 최근 2세 경영체제로 전환하면서 기능성 섬유, 산업용 섬유 등 고부가가치화에 주력하고 있는 것은 참으로 다행이다. 이것이 성공하려면 노동집약적 구조가 아니라 R&D base로 가야하는 데, 이를 위해서는 결국 대학과 산업, 연구소, 정부의 파트너십이 강화되고 대학과 기업의 분업구조도 잘 정착되어야 한다.
아울러 세계 어느 곳에서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심화된 수도권집중화를 막아야 한다. 본사는 물론 주요기술의 R&D 파트가 수도권으로 집중되는 현상이 최근 더욱 심화되고 있다. 이 경우 Decent job을 창출하기가 더욱 힘들다. 이를 해결하지 못하면 안 된다. 따라서 지식기반산업이 성장할 수 있는 생태계조성이 시급하다. 이를 위해서는 글로벌마켓에서의 경쟁시대에서 지역의 국제접근성을 높여야 한다. 부가가치를 기준으로 할 때 물류의 40% 이상이 항공을 이용하고 있는 상황에서 첨단산업이 활성화되고 고급인력들을 대상으로 한 국제비즈니스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동남권신공항 같은 국제공항을 반드시 빠른 시일 내에 건설해야 한다. 아울러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타급 석학들을 유치해 특정 분야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지닌 산학연관 협력이 가능할 수 있도록 하는 세계수준의 지역거점대학(GIU)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 산업사회에서의 중요한 인프라가 공단과 고속도로였다면, 지식기반사회에서의 중요 인프라는 GIU와 신공항이다.
▲조 전 부총리= 지역이 발전하려면 ''핵심능력(Core ability)''이 개발되어야 한다. 내가 보기에는 대구가 섬유산업을 너무 일찍 포기했다. 섬유는 사양산업이 아니다. 이탈리아의 섬유산업은 오래된 전통을 바탕으로 세계적 경쟁력을 지니고 있다. 경제사적으로 볼 때 사양산업이란 그리 많지 않다. 유행이 주기적으로 반복되듯 산업도 붐을 탄다. 지금이라도 2세들이 섬유산업의 붐을 일으키려고 노력하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참 다행이다. 핵심역량이라고 해서 꼭 최첨단 기술일 필요는 없다. 작지만 국내 최고가 되면 지금 같은 글로벌 경제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핵심역량을 개발하는 데 있어서는 대학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 |